올드보이 vs 조커 ,폭력의 철학 차이

 


[올드보이 VS 조커]

『올드보이』와 『조커』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만들어졌지만, 공통적으로 ‘폭력’과 ‘복수’, ‘고립된 개인의 분노’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두 영화는 각각 박찬욱과 토드 필립스라는 감독의 철학을 통해 폭력을 시각화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재와 사회 구조를 고발합니다. 이 글에서는 『올드보이』와 『조커』가 어떤 방식으로 폭력을 설계하고, 어떻게 관객의 감정과 윤리의식을 흔드는지를 비교 분석하며, 두 작품의 철학적 차이를 짚어보겠습니다.


서사 구조: 복수와 절망, 주도성과 운명의 차이

『올드보이』는 오대수(최민식)가 15년 간 감금된 이유를 밝히고 복수하는 과정을 다루며, 그 서사는 순차적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대한 설계 속에 갇힌 인간의 파멸을 그립니다. 주인공은 복수의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나리오 속 인물이며, 마지막에 도달하는 진실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안깁니다. 이는 박찬욱 감독이 말하는 “복수의 무의미함과 인간의 비극성”을 극대화한 설정입니다.

반면 『조커』의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은 사회에서 철저히 배제된 인물로, 점점 무너져가는 자아 속에서 광기를 폭력으로 터뜨립니다. 아서는 점차 폭력의 주도권을 잡으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고, 그 폭력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며 반체제적 상징이 됩니다. 『조커』는 ‘개인의 광기 vs 사회의 부조리’라는 구조로, 폭력의 기원을 개인에게서 사회 전체로 확장시키는 서사를 구축합니다.

이처럼 『올드보이』는 타인의 설계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는 복수극이라면, 『조커』는 자발적인 폭력의 주체로 거듭나는 캐릭터의 탄생을 그립니다. 이는 두 영화의 철학적 접근, 즉 숙명론적 비극 vs 사회구조 비판이라는 큰 틀에서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연출 스타일과 미장센: 정교한 설계 vs 감정의 폭발

박찬욱의 『올드보이』는 폭력을 절제된 미장센 안에서 연출합니다. 특히 대표 장면인 ‘복도 망치씬’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어 폭력의 리듬과 인간의 절박함을 동시에 표현합니다. 피가 튀지만 잔혹함보다는 슬픔이 배어있고, 폭력이 철저히 감정의 도구로 작동합니다. 박찬욱은 “폭력은 미학적 요소가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의 최종 파열점”이라고 말하며, 관객이 ‘왜 저 지경까지 갔는가’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반면, 『조커』는 심리적 불안과 광기를 시각적으로 직선적으로 전달합니다. 색감, 카메라의 흔들림, 아서의 무용 장면은 감정의 혼돈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폭력 장면 역시 극단적인 감정선 위에서 그려집니다. 지하철 총격 장면, 머레이 쇼의 살인 장면 등은 복수의 구체적 대상이 아니라, 아서의 무너진 자아와 사회의 이면을 상징하는 순간으로 작동합니다.

즉, 『올드보이』는 감정 안에 잠재된 폭력, 『조커』는 폭력 안에 잠재된 감정을 풀어냅니다. 폭력을 둘러싼 연출 방식의 차이는 두 영화의 미장센과 상징체계의 철학을 보여주는 핵심 포인트입니다.


캐릭터와 철학: 절제된 고통 vs 폭발하는 광기

최민식이 연기한 오대수는 무너진 인간의 복합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그는 폭력적이지만 그 폭력은 누구에게든 설득 가능한 동기로 시작되며, 끝내 진실 앞에서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박찬욱이 지속적으로 다뤄온 ‘죄의식’, ‘자기파괴’, ‘구원의 부재’ 같은 키워드와도 연결됩니다.

반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사회가 만든 괴물이자, ‘시스템의 희생양’이란 메시지를 전면에 드러냅니다. 그는 점점 비정상적 세계에서 정상이 되어가며, 광기가 무기처럼 사용되는 변화를 보여줍니다. 연기는 감정의 폭발 그 자체로, 무너지는 내면이 외면을 지배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줍니다.

두 인물은 각각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저 사람처럼 될 수 있을까?”와 “나는 이미 저런 세계 안에 살고 있는가?”
『올드보이』는 인간 내면의 나락, 『조커』는 사회 시스템의 폭력성을 조명하며, 관객을 각자의 방향으로 몰입시킵니다.


결론: 폭력을 말하는 두 방식, 같은 질문을 향하다

『올드보이』와 『조커』는 각기 다른 미학과 메시지를 지녔지만, 결국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 구조를 날카롭게 해부한다는 점에서 교차됩니다.
올드보이는 철저히 설계된 복수극이고, 조커는 자생적인 폭력의 진화 과정입니다.
두 작품은 관객이 폭력의 의미와 방향성을 성찰하게 만들며, 단지 ‘자극’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영화들입니다.
이제는 그들의 폭력보다, 그들이 왜 그 폭력에 도달했는지를 다시 생각해볼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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